망한 회사 이메일 1억 통이 139억에 팔렸다
지난주에 본 기사 하나가 며칠째 머리에 남아 있습니다. 구글이 파산한 항공사의 사내 이메일을 통째로 샀다는 이야기입니다. 금액이 10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139억 원입니다.
구글이 산 것의 목록
스피릿 항공은 미국의 저비용 항공사입니다. 2026년 5월에 문을 닫았고, 파산법원이 남은 자산을 경매에 부쳤습니다. 그중 하나가 회사가 굴러가는 동안 쌓인 데이터 전부였습니다.
목록은 이렇습니다.
| 무엇 | 얼마나 |
|---|---|
| 사내 이메일 | 1억 통 |
| 팀즈 대화 | 5억 건 |
| 소스코드 | 3000만 줄 |
| 그 밖 | 운항 기록, 재고, 인사와 마케팅 업무 흐름, 직원 생산성 데이터 |
경매는 500만 달러대에서 시작했습니다. AI 데이터 회사인 머코가 750만 달러를 불렀고 익명의 입찰자가 하나 더 붙었습니다. 구글이 1000만 달러로 가져갔습니다. 승객 정보와 마일리지 회원 기록은 빠졌고, 개인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는 제3자가 지운 뒤에 넘긴다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어느 회사의 직원들이 몇 년 동안 서로 주고받은 업무 메일이, 회사가 없어진 뒤에 139억 원짜리 물건이 되었습니다.
몇 년 전이었다면 이건 그냥 폐기물이었습니다
이 부분을 오래 생각했습니다.
회사가 망하면 남은 것을 처분합니다. 비행기를 팔고, 사무실 집기를 팔고, 브랜드를 팝니다. 값이 나가는 것들입니다. 그리고 서버에 남은 메일과 메신저 기록은, 예전이라면 개인정보 문제나 안 생기게 조용히 지우는 쪽이 정상이었습니다. 보관비만 나가는 짐이었으니까요.
불과 몇 년 전에, 파산한 회사의 사내 메신저 잡담이 100억 원 넘는 값에 팔릴 거라고 누가 이야기했다면 저는 안 믿었을 겁니다.
왜 하필 망한 회사의 메일인가
이유는 단순합니다. 공개된 인터넷은 이미 다 긁혔습니다. 2024년 말쯤에 끝났다고 봅니다. 위키백과도, 뉴스도, 블로그도, 깃허브 공개 저장소도 전부 들어갔습니다. 그다음에 남은 건 공개되지 않은 것뿐입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종류입니다. AI는 잘 쓴 문장이라면 이미 충분히 배웠습니다. 못 배운 게 따로 있습니다. 일이 실제로 어떻게 굴러가는가입니다.
- 급한 문제가 터졌을 때 누가 누구에게 뭐라고 물었는지
- 다 정해진 결정이 어떤 이유로 하루 만에 뒤집혔는지
- 세 번 반려된 견적서가 네 번째에 왜 통과됐는지
- 아무도 문서로 안 남긴 그 회사만의 규칙이 무엇이었는지
이건 블로그에도 논문에도 없습니다. 회사 안에만 있습니다. 그래서 회사가 죽어야 시장에 나옵니다.
이 시장은 이미 굴러가고 있습니다
스피릿 건은 규모가 커서 기사가 됐을 뿐이고, 폐업하는 회사의 데이터를 사고파는 일은 진작에 사업이 되어 있었습니다.
- 심플클로저라는 회사는 지난 1년간 폐업 기업 100곳 가까이를 중개했습니다. 건당 1만에서 10만 달러 선입니다
- 선셋이라는 경쟁사도 같은 일을 합니다. 가격은 회사 규모와 업력, 그리고 데이터 풍부도로 매깁니다. 내부 기록이 서로 얼마나 연결돼 있는지를 보는 값입니다
- 머코는 개인에게도 갑니다. 이전 직장에서 만든 산출물을 최대 30만 달러에 사겠다고 제안한 사례가 보도됐습니다
마지막 줄을 한 번 더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회사가 아니라 개인입니다.
그래서 제 하드디스크를 열어봤습니다
작은 회사를 10년 했습니다. 그동안 쌓인 게 있습니다.
견적서, 계약서, 거래처 메일, 세금계산서, 카톡 업무방, 프로젝트마다 남긴 메모, 왜 그 단가로 갔는지 적어둔 엑셀 한 칸. 그동안 저는 이걸 언젠가 정리해야 하는 짐으로 봤습니다. 용량만 먹는 것들이라고요.
지금 보니 짐이 아닙니다. 10년 동안 저라는 사람이 무엇을 겪었고 어떻게 판단했는지가 통째로 들어 있는 기록입니다. 세상에 저 하나뿐입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제 자료가 139억 원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제가 하려는 말은 이겁니다. 어제까지 쓰레기였던 것이 오늘 자산이 된 사례를 방금 봤다는 것. 그리고 그 값을 정한 쪽은 자료를 만든 사람이 아니라, 몇 년 뒤에 나타난 사는 쪽이었다는 것.
자동화의 시대에 역설적으로 기록이 남습니다
지금 저는 웬만한 일을 AI에게 넘기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를 옮기는 일도, 견적서를 만드는 일도 그랬습니다. 앞으로 더 넘어갈 겁니다.
그러면 저한테 남는 게 뭔가. 요즘 이 질문을 자주 합니다.
답이 조금씩 보입니다. 남는 건 실행이 아니라 맥락입니다. AI는 제 일을 대신 해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난 10년 동안 무엇을 겪었고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는, 제가 남기지 않으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검색해서 나오지 않습니다. 저만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정확히 그겁니다. 회사 안에만 있던 것에 값이 매겨지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남길 것인가
거창하게 시작하면 3일 만에 그만둡니다. 저는 이 정도만 지킵니다.
지우지 않습니다. 메일은 삭제 대신 보관으로 넘깁니다. 오래된 프로젝트 폴더를 정리한다고 버리지 않습니다. 용량은 지금 세상에서 제일 싼 것 중 하나입니다.
흩어진 것을 한군데로 모읍니다. 카톡 업무방은 대화 내보내기가 됩니다. 지메일은 구글 테이크아웃으로 통째로 받아둘 수 있습니다. 지금 쓰는 서비스가 10년 뒤에도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남의 서버 안에만 있는 기록은 아직 제 기록이 아닙니다.
결과가 아니라 이유를 적습니다.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n8n으로 옮김" 다섯 글자는 나중에 아무 값이 없습니다. 잘 돌아가던 앱스 스크립트를 굳이 n8n으로 옮긴 이유는 값이 있습니다. 결과는 어디서든 구할 수 있고, 이유는 겪은 사람만 압니다.
형식은 최대한 단순하게 둡니다. 저는 마크다운 파일로 적고 깃에 올립니다. 멋있어서가 아니라 10년 뒤에도 열리는 형식이라서 그렇습니다. 특정 툴 안에 잠긴 기록은 그 툴이 망하면 같이 망합니다.
AI와 나눈 대화도 기록입니다. 저는 클로드에게 캐묻는 방식으로 배웁니다. 그 대화 안에 제가 뭘 몰랐고 어떤 순서로 알아냈는지가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이것도 안 지웁니다.
그리고 이 블로그 자체가 그 기록입니다. 남 보라고 쓰는 것도 있지만 절반은 제가 나중에 보려고 씁니다.
미래는 알 수 없습니다
파산한 항공사의 팀즈 잡담 5억 건이 139억 원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 메일을 쓴 직원들은 그냥 그날 자기 일을 한 겁니다. 이게 나중에 뭐가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 쓴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러니 반대로 생각해도 됩니다. 오늘 제가 남기는 사소한 메모가 몇 년 뒤에 무엇이 될지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없다는 것이 남겨야 하는 이유입니다.
값이 붙을지 안 붙을지는 제가 정하는 게 아닙니다. 제가 정할 수 있는 건 하나뿐입니다.
남아 있느냐, 없느냐.
기록하십시오. 또 기록하십시오. 계속 기록하십시오.
비슷한 상황이라면 편하게 물어보세요. hello@choworks.d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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